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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역사유적지구’ 1천300년전 모습 보며 온 몸에 소름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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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광규 기자
기사입력 2019/07/14 [13:30]


천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1천3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백제 왕비의 목걸이가 간직한 아름다움은 현대 그 어떤 디자인의 목걸이에 비해서도 아름다워 보였다. 무령왕 왕관에 달려있던 금제 관식의 섬세함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백제 무령왕 왕관의 장식품인 금제 관식과 무령왕 왕비의 목에 걸려 있었던 금제구절경식은 각각 국보 154호 국보 158호로 등재되어 있었다.  


눈앞에서 마주한 이들 1천300년전 백제의 유물은 모조품이 아닌 진품이라고 했다. 진품이 전하는 감동은 몇몇 박물관에서 마주하던 모조품의 감흥과는 차원이 달랐다.


바로 1천300년전 무령왕의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 같은 백제 문화의 정수를 마주한 감동은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지난 12일 국립공주박물관에서였다.


 국보 제158호인 금제구절경식



  국보 154호인 금제 관식

 


◆ '백제문화, 역사유적지 팸투어'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

백제역사유적지구 홍보를 위한 관광객 유치와 관광 상품 개발을 통한 백제역사유적지구 관광 활성화를 위한 ‘제3차 백제문화, 역사유적지 팸투어'가 열렸다.


팸투어는 백제세계유산센터가 주최하고 전라북도관광협회가 주관해 지난 11일부터 12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이번 행사에는 <인터넷언론인연대> 소속 매체 기자와 관계자 등 20여명이 참가했다.


팸투어 참가자들은 첫째 날인 11일 에는 익산 왕궁리 유적지, 미륵사지, 익산보석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정림사지, 궁남지를 찾았다. 둘째 날인 12일에는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발굴관람은 물론 공주 공산성 국립공주박물관 등을 둘러보며 백제문화의 정수를 흠뻑 맛볼 수 있었다.

행사에 참여한 후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익산 미륵사지였다. 이곳에서는 국보 11호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우아한 자태를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예전 학력고사 국사시험에서 4지 선다형의 문제로 곧잘 출제되던 ‘목탑양식의 백제 시대의 석탑’이 바로 '미륵사지 석탑'이기도 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실제 백제 무왕(600~641년 재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하는 과정의 구조를 보여주는 사원양식으로 그 단아하고 똑 부러지는 절제미가 이채로웠다.

이어 방문한 곳은 마찬가지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 무왕기에 조성된 왕궁리 유적지였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백제의 화장실 문화였다. 또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형의 찡그린 표정은 절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익살맞았다.

 



익산보석박물관에서 수십억원을 호가한다는 화려한 보석에 넋을 잠시 빼앗기면서 눈으로 한껏 호사를 한 후 이어진 곳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정림사지와 백제왕궁의 위엄을 재현해 놓은 백제문화단지였다.

 

백제왕궁의 위엄은 '천정전(天政殿)'으로 대표되고 있었다.

이곳은 외국사신의 접견이나 신년하례, 왕실의 행사의식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시에만 사용하던 공간으로 연중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공간이라고 했다.

건물은 국가의 가장 큰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높은 기단위에 외부는 2층 규모이며, 내부는 통층으로 건축해 건물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웅장함과 함께 엄숙성을 강조해 왕의 권위를 느낄 수 있었다.

부여군 이영희 문화해설사는 "천정전과 천정대는 그 당시 왕정에서 사용하던 건물로써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던 신성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 부소산성 발굴 현장  



참가자들은 이틀째인 12일에는 백제시대 계획도시였던 부여 관북리 유적과 백제 왕실의 뒤뜰이었던 부소산성의 발굴 현장을 관람했다. 이어 공주에서는 공산성과 함께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백제의 정수를 맛보았다.

먼저 찾은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에서는 백제인이 세운 계획도시의 면모를 여실히 읽을 수 있었다. (田)자형 도로망은 현대 그 어느 계획도시 보다 치밀하게 설계된 듯 했다.

실제 이날 해설을 직접 맡은 백제세계유산센터 이동주 센터장의 설명에 따르면 십자형 교차로에 있는 도로 가장자리에는 마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게끔 하는 돌이 세워져 있는 등 과학적 설계가 돋보였다. 

 공산성



이어 찾은 세계문화유산인 공산성(公山城)은 웅진시기 방어성이자 왕성이었다.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동. 서. 남쪽은 가파른 언덕위에 성벽을 쌓으면서 한 눈에 보기에도 요새처럼 보였다.

실제 공산성은 문주왕이 자신의 재위 원년(475년)에 이곳으로 도읍을 옮긴 후 성왕 16년(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64년간 고구려에 맞서 왕도를 지켜냈다. 공산성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 선조·인조 때 현재와 같은 석성으로 개축됐다.

금강을 따라 가파른 등선위에 쌓여진 고풍스러운 2.6km 길이의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1,50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긴장한 가운데 북쪽에서 쳐들어올 고구려 기마병에 대비하고 있었을 백제 병사의 눈초리가 느껴졌다.

 

 글자가 새겨진 은고리(多利作 銘銀製釧’)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국립공주박물관. 이곳에서는 서동설화의 주인공으로 알져진 백제 무령왕의 유물을 마주 할 수 있었다.

1971년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에서는 백제시대의 유물 4600여 점이 쏟아졌는데 이 중 17점이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출토된 유물가운데 왕과 왕비의 각종 장식품은 수준 높은 백제 공예기술을 자랑하고 있었다.

특히 지석을 통해 무령왕의 생몰연대가 밝혀지면서 백제 고고학 연구에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이날 마주한 무령왕릉 출토 금제관식의 섬세함은 눈을 크게 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 연꽃이 새겨진 기왓장에서는 극락왕생을 바라는 간절한 백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1천 4백년전 무령왕 관의 표면을 덮고 있는 옻칠은 여전히 그 요요로운 먹빛을 간직하면서 엄숙하게 치러졌을 무령왕 장례식의 슬픔이 전해져 오는 듯 했다.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목관



◆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인의 넉넉함을 읽을 수 있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바 있다. 이곳은 총 8개의 유적을 포함한 연속유산으로 공주시에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군 4곳(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 별도였던 익산시에 2곳(왕궁리 유적, 미륵사지)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유적은 한국·중국·일본 동아시아 삼국 고대 왕국들 사이의 상호 교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유네스코로 부터는 등재 당시 백제의 내세관·종교·건축기술·예술미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백제 역사와 문화의 특출한 증거라는 점 등을 높이 평가 받았다. 

백제세계유산센터 이동주 센터장은 “이들 유적지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으나 각 유적에 대한 가치홍보와 연계 방문을 통하여 공주, 부여, 익산이 매력적인 백제문화권 관광지임을 알리고 이로 인해 방문객 증가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1박 2일 일정의 이번 팸투어 소감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백제인의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는 점 같다. 또 앞으로 누가 가자고 하면 열 일 제치고 다시 한 번 넉넉한 일정을 가지고 백제의 숨결을 맛보고 싶다. 1박 2일 일정은 짧아도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여행을 마친지 사흘이 지났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의 감동은 채 가시지 않은 채 내 가슴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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