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얀마 군정 전투기 이용, 민간인 마을 폭격 양민학살
이재상 기자   |   2023-04-12

▲ 대규모 양민학살이 자행된 미얀마 중부지역 사가잉주 깐블루 타운십 소재 버지찌 마을.  사진제공=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미얀마에서 대규모 양민학살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큰 충격을 던진다. 

 

지난 2021년 2월 1일 군사쿠데타를 통해 아웅산 수찌의 민주정부를 전복하고 군사정부를 수립하여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미얀마에서 지난 11일 대규모 양민학살 사건이 발생한 것.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에 따르면 중부지역인 사가잉주 <깐블루 타운십 소재 버지찌 마을>에서 4월 11일 오전 8시경 열린 마을 사무소 개소식에 군사정부가 전투기를 투입해 폭탄을 투하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주민들에게 헬리콥터를 동원해 2차 공습까지 감행하여 행사에 참여한 마을주민 다수가 현장에서 숨졌다. 현재 미성년자 30여명을 포함 1백여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는 것. 

 

미얀마 군부의 전투기를 이용한 마을 폭격은 4월 11일 오전 8시 5분께 발생했다. 버지찌 마을 상공에 나타난 군부 공군 소속 전투기가 1차례 폭격을 가한 뒤, 이어 Mi-35 헬리콥터가 4차례에 걸쳐 추가 공중공격을 가했다. 

 

현장 수습에 참여한 지역주민은 "오전까지 확인한 온전한 시신만 53구에 달하며, 머리와 신체 일부가 손실되어 수습 중인 시신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육안으로 확인한 희생자 수는 1백여 명을 넘는다. 훼손 상태가 심각한 시신이 많아 어디서부터 수습을 시작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다."라고 현장의 참상을 전했다. 

 

현장에서는 미성년 희생자도 다수 발생했다. 한 지역주민은 "숨진 어린이들 수도 상당하며, 여성 희생자도 다수 발생했다. 하지만 시신 훼손 상태가 심해 자세한 실태 파악이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지역주민들은 폭격 현장에 모여 시신 수습과 부상자 구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인력과 장비, 의약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현지 소식통은 폭격 당시 마을에서는 마을 공동체 시설(회관) 개소식이 진행 중이었으며, 행사 주최 측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하며 인파가 몰린 와중에 폭격이 이루어져 대량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마을 지도자 등 행사에 참여한 인사들만 50명이 넘고, 이들 모두가 목숨을 잃었다. 폭발로 발생한 불에 시신이 훼손되며 희생자 수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폭격 당시 행사를 위해 설치한 무대 앞에서 참석자들에 아침 식사를 제공했다. 아이들 또한 등교 전에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행사장에 불러놓았고, 폭격 직전 아이들을 포함한 참석자 90명 이상이 식탁 17개에 빼곡하게 둘러앉아 식사 중이었다. 군부가 투하한 포탄이 무대와 식사 장소를 직격했고, 현장에 있던 이들 모두가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중 미성년인 아이들 약 30여 명이 포함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첫 번째 폭격으로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한 직후 군부는 전투용 헬리콥터까지 투입해 추가로 공중사격을 가하는 잔혹성을 보였다. 

 

참사현장에서 활동 중인 지역 소식통은 "현재까지 확인된 시신 50여 구는 군부의 추가 헬기 사격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것이다. 첫 전투기 폭격으로 숨진 이들은 시신 훼손이 극심해 사망자 숫자를 확인하기조차 쉽지 않다. 폭격 장소 곳곳에는 사방에 희생자들의 조각난 신체가 흩어져 있다. 심지어 훼손된 신체가 폭발지에서 70피트(약 21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시신 수습에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본다."라고 하면서 "주민 상당수가 목숨을 잃은 데다 고온의 날씨 때문에 현장 수습에 어려움이 많다.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힘을 보태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거기에 군부 전투기가 오후 5시 35분 경에 추가 폭격을 하며 현장에 남은 학살 증거 훼손을 획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신에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다."라고 밝혔다. 

 

한편 현장에서는 희생자들의 장례를 치를 여력이 없어 시신과 훼손된 신체를 곳곳에 모아 둔 상태며, 가용한 인력을 총동원해 부상자 구조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미얀마 군부의 전투기를 이용한 대규모 양민학살 사건이 미얀마 내 SNS를 통해 국내에 알려지자 약 3만5천의 국내 거주 미얀마인들은 경악과 함께 큰 슬픔에 빠졌다. 

 

현 군사정부에 저항하는 민간정부인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 ‘얀나잉툰’특사는 전화취재에서 "불법으로 정권을 장악한 ‘민흘라잉’을 비롯한 군사쿠데타 반란세력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이들을 포함한 자국민 100여 명을 전투기를 동원해 학살한 군정은 단연코 테러세력이며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 자유국가 나서 자국민을 상대로 잔학한 전쟁범죄를 벌이는 군정을 응징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미얀마 민주주의 회복 투쟁을 지원하고 있는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정범래 대표는 이번 군사정부의 학살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면서 "미얀마 군사쿠데타 테러세력의 반인륜적인 전쟁범죄를 강력히 규탄"하며 "추가적인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대한민국을 포함 UN 등 국제사회가 미얀마 일부 지역에 대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등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쟁범죄를 증오하고 학살자들에 대한 심판에는 공소시효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면서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미얀마에 하루빨리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한다" 라고 덧붙였다. 

 

현지기사참조 에야와디(The Irrawaddy)

번역참조 : 미얀마 투데이(Myanmar Today)

 

  사진 제공 =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다음은 현장 생존자의 현지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군부의 무차별 공습으로 민간인 1백여 명이 숨진 사가잉주 깐블루 버지찌 마을 학살 생존자 인터뷰] 

 

기사원문 : 에야와디(The Irrawaddy)

번역 : 미얀마 투데이(Myanmar Today) 

 

2023년 4월 11일 오전 8시 5분, 미얀마 중부 사가잉주 깐블루 타운십 소재 버지찌 마을에 군부가 전투기와 헬리콥터를 동원해 무차별 공습을 자행했다. 당시 버지찌 마을에서는 주민자치단체의 사무실 개소식이 열리던 와중이었고, 현장에는 마을 지도자 및 주민 150여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군부는 군중이 모인 장소를 정밀 타격했다. 반인륜적 폭력으로 버지찌 마을 행사장에서는 임산부와 미성년자를 포함한 무고한 민간인 1백여 명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폭발과 화염으로 찢기고 불탄 희생자들의 신체는 현장 곳곳에 흩뿌려졌다. 

 

현지 자유언론 에야와디는 현장의 참상을 자세히 알리기 위해 버지찌 마을 참사에서 목숨을 건진 생존자를 인터뷰하여 보도했다. 해당 인터뷰를 미얀마 투데이가 아래와 같이 한국어로 번역하여 한국 시민사회에 전하고자 한다. (※ 번역 내용 일부에 의역과 축약이 있음을 미리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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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공습으로인한 폭발 당시에 현장에 있었는지? 이번 참사로 숨지거나 부상당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지 궁금하다. 

 

답 : 저는 현장에 있었고, 운이 따르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 150여 명이 운집한 자리를 포탄이 직격했다. 

 

폭발 직후 주변을 봤을 때 서너살 짜리 아이부터 예닐곱살 어린이들이 쓰러져 있었다. 부상당한 이들도 서른 명 가까이 되었다. 폭발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열 다섯 명 정도다. 사망자 규모는 1백여 명으로 추정하며 그 중 미성년자가 최소 스무 명 정도 포함됐다. 

 

서너살 짜리 아이들은 부모들에 이끌려 행사장에 왔다가 변을 당했다. 폭발의 충격으로 아이들의 시신은 머리와 사지가 떨어져나가 이곳저곳에 흩어진 상태였다. 사망자는 여성이 많으며 임산부도 희생됐다. 거동에 문제가 없는 초기 임산부 10명 정도가 행사장에 왔다가 숨졌다. 경상을 입고 목숨을 건진 사람 열댓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살아남지 못했다. 

 

문 : 방금 언급한 사망자 숫자가 확인된 시신을 근거로 하는지? 훼손된 시신도 집계에 포함한 것인가? 

 

답 : 현장에 멀쩡한 시신이 드물다. 머리없는 시신, 다리없는 시신 등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의 희생자가 대다수다. 훼손된 시신과 신체 일부는 한데 모아 쌓은 뒤에 화장했다. 

 

문 : 행사가 주민자치단체를 위한 사무실의 개소식이라고 들었다. 행사에는 마을 주민만 참석했는가? 아니면 외부 손님도 있었나? 

 

답 : 마을주민이 대다수였지만 주변 마을에서 온 손님도 일부 있었다. 이른 시간에 열린 행사라 참석자 대부분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문 : 현장에서 경험한 공습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달라. 

 

답 : 전투기가 목격됐다는 이야기가 마을 서쪽의 혁명단체로부터 전달됐다. 첩보가 전달되자마자 전화 통신선이 차단되었다. 때문에 저는 통화를 시도하러 잠시 행사장 밖으로 나왔는데, 그 순간 전투기가 마을 상공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 희생당한 이들 모두가 대피할 틈도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중 변을 당했다. 

 

저는 폭발 직후 나가 떨어졌는데, 아스팔트 도로 옆에 있던 생활하수가 흐르는 수로 속으로 쳐박히면서 목숨은 건졌다. 

 

문 : 포탄은 몇 발 떨어졌는가? 폭발에 대해 설명해달라. 

 

답 : (통신차단 직후) 전화 통화를 시도하려는데 바로 폭발이 일어났다. 전투기가 포탄을 투하했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이후 추가로 폭발음이 들리지 않아 수로에서 나왔왔는데, 그때는 이미 모든 게 산산조각난 뒤였다. 

 

제가 서있던 곳과 (포탄) 폭발장소가 채 스무 걸음 거리밖에 안 됐다. 길 옆에 수로가 있던 게 행운이었다. 죽지않고 부상만 입은 이들은 폭발장소에서 오십보 정도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다. 

 

살아남은 이들은 우선 부상자와 사망자를 구분하며 목숨이 붙어있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오토바이와 차를 가져와 구조를 시작했다. 

 

사망자들의 신원은 파악하기 힘들었다. 말 그대로 시신이 머리따로 몸따로가 되어 사방에 흩어졌기 때문이다. 조각난 살점들과 신체 일부가 길 위에 떨어져 있었다. 

 

혹여나 쓰러진 사람들이 숨이 붙어 있을까 하는 바람으로 확인을 해봤지만 모두가 이미 사망한 뒤였다. 군부가 추가로 공습을 가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일단은 산 사람부터 치료하자는 생각으로 시신은 제쳐두고 구조작업에 몰두했다. 

 

전투기가 폭격을 가한 것은 오전 8시께 한 차례였고. 이후 Mi-35 기종 헬리콥터가 나타나 삼십분 가량 재차 사격과 포격을 가했다. 이때 공격을 피해 달아나던 주민들은 수로 안으로 뛰어들었고, 수로에 숨은 이들은 모두 목숨을 건졌다. 

 

문 : 근방에 자치단체 거점이 하나만 존재하는지? 

 

답 : 자치단체 사무실은 마을 외곽에 마련됐다. 보안 문제로 마을 밖에 사무실 건물을 지었다. 포탄 한 발로 사무실 건물이 완파됐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제가 들은 소리는 불길에 (현장에서 혁명단체가 보관하던) 지뢰와 포탄이 연달아 터지는 소리 뿐이었다. 한 시간여 동안 서른 번 가까이 폭음이 들렸다. 

 

문 : 시신은 화장이 이루어졌는가? 유가족에게는 소식이 전해졌는지 궁금하다. 

 

답 : 시신을 한데 모아 두었다. 흩어진 살점이 많아 빗자루로 쓸어 모아야하는 수준이었다. 모두를 보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시신) 일부는 오전 11시 무렵 저희가 직접 화장했다. (신원을) 구분을 할 수도 없어서 한데 태울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군부 공습 경보가 있어 작업을 중단했다. 희생자 신원 확인을 위해 유가족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 유가족에 연락할 겨를도 없이 생존자들은 모두 피란길에 올랐기에 세세한 확인은 어렵다. 

 

문 : 희생자 중에 시민방위군 등 지역 혁명단체 활동가도 포함되었는지? 

 

답 : 인근의 혁명단체 지도자도 변을 당했다. 행사장에는 혁명단체 소속 인물이 스무 명 가량 있었는데, 대부분 저처럼 행사장 안팍을 오가며 분주했던지라 폭발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때문에 목숨을 잃은 건 대부분 마을주민들이고 혁명단체 대원들의 피해는 적었다. 

 

문 : 현 상황에서 전하고자하는 말이 있는지? 참사 이후 주민들은 어떤 상태인지? 

 

답 : (군부의 행태는) 극도로 사악한 일이었다. 인근에서 무력충돌이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의 폭력을 동원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교전 상황에서 공습을 가한 것이면 이해라도 하겠으나 이러한 일방적이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하리라고는. 

 

주민들은 마을에서 떨어진 밀림으로 대피시켰다. 남자들만 마을에 돌아왔고, 여성과 노약자들은 아직 피란처에 머물고 있다. (폭발 이후) 저는 계속 이명 현상을 느끼고 있으며, 시력에도 문제가 생기는 등 후유증을 앓고 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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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니 23/04/12 [09:15]
미얀마에 민주주의를!
군사정부 학살자들에게는 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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