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는 김성수(88) 철학박사가 입동인 8일 저녁 서울 낙성대 만남의집을 방문해 투병중인 양원진(95) 김영식(91) 박희성(89) 비전향 장기수들을 병문안하고 저녁을 함께했다.
김 박사의 방문에는 정해숙(90) 전교조 원로교사와 양희철(90) 시인, 박해전 사람일보 회장, 한성 자주통일연구소 소장이 동행했다.
![]() ▲ 김성수 박사가 비전향 장기수들과의 만찬장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람일보 |
김성수 박사는 만찬 인사말에서 "몇십년 동안 해외에서 통일운동을 하면서 신념을 가지고 초지일관 산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며 경험했다"며 "신념의 강자 장기수 선생님들은 신념을 변함없이 지킨 사람들의 모범이라고 생각한다"고 경의를 표했다.
김 박사는 또 "장기수 선생님들의 훌륭한 삶은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 보감이 된다. 조국통일의 그날 마음 뿌듯한 환호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통일의 날을 앞당기면서 앞으로도 몸과 마음이 꿋꿋하고 건강하게 사시기 바란다"고 위로했다.
양원진 장기수는 "후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첫째로, 젊은이들 앞에 면목이 없다. 내가 조국통일 위해서 전쟁 3년 동안에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 못했다. 어차피 죽을 사람 내가 몸을 아껴서 무엇하나. 밑거름이 되고 죽자. 이렇게만 살았는데 못난이가 오래 산다고 못난이가 오래 살았어"라고 삶을 회고했다.
이어 "둘째로, 남조선 사람들이 바보같이 조국통일 못하고 죽었다고 북조선 사람들에게 자책하지 마라. 북조선 사람들은 당이 보호하여 해방 후에 투쟁을 잘하면 칭찬받고 승진하고 발전했다. 남조선 사람들은 다 죽임을 당했다. 남조선이 그냥 바보같이 당했다고만 생각하지 마라. 그 힘이 강한 미국놈하고 싸워서 견딜 수 없어 다 죽은거야.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시장이 되고 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하지 않는다. 한개 병사도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다고 하는데. 미국 한번 갔다오면 기가 죽어 목숨을 구걸하고. 이 엄혹한 조건에서 비참하게 가혹하게 싸웠다는 것을 가지고 배가노력하여 조국통일에 이바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수 박사는 1973년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와 관련된 ‘유럽거점간첩단사건’에 연루되어 1973년 10월부터 2003년 9월까지 30여년간 조국 방문을 할 수 없었다. 독일에서 50여년간 조국의 민주화운동과 평화통일운동에 주동적으로 참여했다.
조국 분단으로 수십년 커다란 고통을 겪어온 해외동포 김 박사가 수십년 옥고를 치른 비전향 장기수들을 위문한 것은 뜻깊은 상봉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