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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꾼의 소리막는 마스크....40년된 소리내며 같이 놀자!”

[동행 인터뷰] 40년 사물놀이 남사당 광대 이봉교 동방연희단(나비야)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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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석 송경민 기자
기사입력 2020/08/04 [20:03]

[취재 인터넷언론인연대 수원시민신문 김삼석 기자     편집 송경민 기자]


1964년 유네스코 등재 국가무형문화재 3호로 남사당놀이가 지정된 뒤 1993년에 전국의 남사당 이수자 90명 중 서열 네 번째 이수자 이봉교. 그 동안 국내 600회, 해외 400회 공연을 다닌 동방연희단(나비야) 단장이다. 1955년생으로 인생후반기를 살고 있지만 장구와 꽹과리를 들고 서수원 지역의 칠보산을 오르내리면서 코로나 정국을 이겨 나가고 있다.   

 

‘코로나 정국을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그를 만나 제일 먼저 질문하고 싶었다. 놀이꾼을 만나고 싶지만 감염정국은 그를 방해하고 있다. 지금의 인생을 어쩔 수 없이 코로나 정국 전후로 구분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그를 만나 인류 최대의 위기 코로나 정국에서 40년 인생 ‘놀이’를 하면서 살아온 법과 힘겹게 살아가는 법을.

 

중복날 칠보산 자락 열구자 식당에서 뜨거운 삼계탕을 목에 넘기면서 그의 놀이 인생을 들어 보았다. 그는 줄곧 이 정국을 뚫고 세상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사물놀이를 가르칠 연습생을 만나고 싶어 했다. 사람을 뜨겁고 신나게 만나고 싶어했다. 산이나 들에서 장구를 치며 인생을 즐길 남녀노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동방연희단(나비야)의 이름은 거창하게 동방에 빛나는 우리의 민중예술 ‘동방연희’를 뜻한단다. 너무 나갔다. 그래도 바닥에서 빛나게 마스크를 쓰고 다닐 수밖에 없는 민초들의 삶을 담아 소리에 담는 그의 정열을 믿기로 했다. 식당에서 뜨근뜨근한 삼계탕이 나왔다. 목구멍으로 밀어넣었다. 이열치열이다. 그와 뜨거운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살판 명인(땅재주), 신명나게 살판과 장구치는 남사당의 후예! 이봉교! 그는 칠보산 산행 중에도 꽹과리를 울려 퍼지게 할 정도로 살판과 한 몸이 되었다. ©인터넷언론인연대

 

 

◆40년 넘게 사물놀이와 남사당 연희 풍자극 공연을 해온 광대!

 

- 코로나 정국을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소리를 막는 마스크 때문에, 40년을 넘은 경력을 접어야하나 말아야 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해서 예술이 어떻게 살아남나? 고민이 가득 찼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되는데 돌파구가 안보인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바닥에서 무언가 꿈틀 거렸다. 열정이었다. 사람들은 만날 수 없고, 혼자서 칠보산을 등산하면서 신비한 산의 에너지를 얻기 시작했다. 그 힘으로 수원지역의 사람들을 만나서 득음뒤 40년 된 소리를 내기로 했다. 모두 같이 놀자고...”

 

- 언제부터 판소리 등 구음을 하신 건가요.
“고향이 평양인 외할머니가 장구를 치면서 소리를 하셔서 그거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어머님이 처녀 때 서울로 월남을 하셨고, 어머님도 노래를 잘하셨다. 당시 아버님은 군인이셨다. 외할머니 영향으로 제가 어려서부터 중얼중얼했다고 한다. 1975년경 10대 말쯤 사물놀이를 접하면서 남사당의 김용배, 김덕수 선생을 알게 되었다. 살판은 땅재주를 공부하는 건데, 다행히 어려서부터 평택에서 18기 전통무예를 하면서, 중국무술인 쿵푸를 같이하게 돼 운동신경이 있어서 그게 땅재주에 도움이 되었다.

 

평택에 인간문화재 송복산 선생이 살아계시면서 아들인 송일남 선생의 친구인 김용배 선생이 서로 내왕하면서 저를 얘기해서 저를 요즘말로 길거리 캐스팅을 한 셈이다. 그 사람들이 와서 나를 지목을 한 것이다. 당시에 ‘애를 데리고 가서 키워보자’ 했던 거다. 1970년대 중반에 서울 석관동에 예술학교내에 무형문화재 전수회관과 남사당 전수관도 있었다.

 

예술학교 안에 전수관이 있어서 봉산탈춤, 대학회, 북청사자, 남사당 등 유무형 문화재가 그곳에 있었다. 남사당 연습장과 사무실이 그곳에 같이 있어서 그 연습장을 평택에서 다니기 시작했다.

 

전수관을 왔다 갔다 하면서 1979년 사물놀이가 생겼다. 저는 서울 미아리고개 태극당 뒤에 사물놀이 연습장을 주로 다녔다. 사물놀이 공부도 하면서 일도 하면서 살판, 소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사물놀이가 1981년에 서울 마포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1983년에 남사당 전수관(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은 강남 선릉으로 이사 가서 연습과 공연을 위해 다녔다.

 

마포에서 살판을 공부하면서 선배들 일을 돕는 보조 구실을 했다. 그 당시 사물놀이 선배는 김덕수, 김용배, 이광수, 최종실 등이었다. 이 분들 도움을 제일 많이 받았다. 제가 최고 막내여서 연습장일하면서 자질구레한 일은 제가 다했다. 제가 사실은 도맡아 했다”(웃음)

 

- 남사당 연희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남사당놀이보존회는 국가무형문화재다. 사단법인 남사당이라고 칭한다. 남사당 연희는 한마디로 ‘놀이’다. 지금은 TV, 인터넷 등 놀이가 많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연희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풍자, 연극, 복합적인 극이다. 즉 종합예술로 보면 된다. 알려져 있는 안성 남사당은 지방문화재다”

 

- 남사당 이수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유네스코 등재 국가무형문화재 3호 남사당놀이로 1964년에 지정되었다. 제가 줄곧 남사당 공부를 10년 가까이 해서 서울 마포에 있을 때인 1993년에 이수자가 되었다. 나라에서 저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준 셈이다. 이수자는 남사당 공부를 이수한 확인증이면서 공연은 물론 연습생을 가르칠 수 있다”   

 

- 남사당 3호 이수자는 몇 명인가?
“현재 국내 95명이다. 문화재청에서 구분하는 것은 1단계 인간문화재, 2단계 전수 조교, 3단계 이수자, 4단계 전수 장학생, 5단계 전수자(은어로 삐리)로 나뉜다. 전수조교는 인간문화재를 보좌하는 사람이다. 다 가르칠 수 있는 데 특별히 전수조교만이 남사당 여섯(6)마당을 가르칠 수 있다.

 

그동안 총 전수자가 740명 되고, 전수 조교는 현재 1명. 이수자는 95명, 전수 장학생은 총 전수자 중 3/1쯤 된다. 전수 조교는 각 놀이마당(종목)마다 6명이 있는 꼴이다. 전수 조교는 진명환 선생 1인이다. 인간문화재는 박용태 선생으로 서울에 사시면서 후학을 기르고 있다. 여섯(6)마당은 풍물, 덜미(인형극), 줄타기, 땅재주(살판), 버나(접시돌리기), 덧빼기(덧보기, 탈춤)다. 덜미쇠, 살판쇠, 버나쇠, 덧빼기쇠 등의 각 마당의 대장으로 ‘뜬쇠’라고 하는 데, 최고의 뜬쇠인 총대장을 상공운이라고 한다. 상공운은 총지휘자다. 꽹과리를 다룬다. 오랜 경력이 있어야 윗사람이 되는 지휘자인 상쇠인 셈이다”

 

- 박용태 선생은 어떤 분인가?
“인형극을 하시고, 인형극을 제작하시는 분으로서, 인형극은 꼭두각시놀이로서 덜미 박첨지 놀이라고 하는 데, 꼭두각시는 풍자극이라고 보면 된다”

 

- 풍자극에 대해서 더 설명해 달라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양반들의 세태를 풍자와 해학으로 표현하면서 배꼽 쥐게 뒤집어 놓는 극이다. 풍자극을 통해서 민중들의 마음을 풀어준다. 풍자극으로 남사당 굿판(마당놀이)이 최고 였다”

 

▲ 40년 넘게 사물놀이와 남사당 연희 풍자극 공연을 해온 광대 이봉교! 그가 서수원 칠보산 자락 열구자 식당에서 활짝 웃었다. 지난 7월 26일 중복날 점심때다 

 

◆“저의 놀이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 남사당 굿판이 어떤 면에서 최고인가
“민중들의 설움을 달래고.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흥을 돋우는 면에서 민중들의 놀이로서는 최고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이수나 전수를 받아서 놀이로서 세상을 밝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 남사당 굿판을 하면 무엇이 좋아지는가?
“상모를 돌리며 머리와 몸을 쓰고 음악을 두드리고, 춤을 하니 몸도 좋아지고, 정신도 좋아진다. 즉 머리 돌리고, 몸을 쓰고, 음악을 두드리고, 춤을 추는 것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일반 사람이 처음 배우러 온 사람한테 시험을 보게 하는 데, 시험보는 것은 무슨 기능을 할지 아는 지 알아보는 것이다. 아무래도 자질이 있는 사람이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다”

 

- 3년 전(2017년) 불가사리 제목의 뉴질랜드 공연에 대해서 말해 달라
“이한주(실험창작음악가), 사토 유끼에, 계수정(피아노), 서태경(즉흥 실험적인 퍼포먼스), 이안 존 허친슨은 실험음악 창작음악가이자 피아노 연주자, 존벨도 음악가로 피아노 트럼펫을 연주했다. 이한주 씨는 악기를 변형시켜서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나는 장구, 소리(비나리 소리)를 들려주었다. 소리는 구음(입으로 하는 소리)으로, 구음에 대한 반응은 발음은 없지만 목소리로 음악, 높낮이 곡을 해서 국경을 초월해 인기를 끌었다. 고사, 덕담소리 등이 구음에 들어간다. 뉴질랜드 음악인들이 저희를 초청했는 데, 뉴질랜드 재즈오케스트라와 3주 정도 뉴질랜드를 북에서 남으로 돌아다니면서 협연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교포들도 만났다”

 

▲ 2017년 뉴질랜드 음악인들이 이봉교씨를 초청했는 데, 뉴질랜드 재즈오케스트라와 3주정도 뉴질랜드를 북에서 남으로 돌아다니면서 협연했다. 당시의 포스터 

 

- 국내, 해외공연은 몇 차례 다녔는가?
“국내 해외를 합해 거의 1,000회 정도로 전 세계를 다니지 않은 데가 없었다. 국내공연으로는 특별히 생각하는 공연은 저희 IMF때 금모으기 운동의 하나로 미국, 독일에서 공부한 정명훈 지휘자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사물놀이를 협연한 적이 있다. 당시 저는 장구를 쳤다. 이 공연은 일본의 도쿄, 오사카에서도 열렸다”

 

- 스마트폰을 즐겨보는 젊은 층에 대해 사물놀이를 어떻게 알리고 접근해야 한다고 보나?
“말로 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젊은 층과 소통을 해야 되는 데. 동네에서 조그맣게 워크샵이나 교육, 공연 등을 통해서 가까워지고 싶다. ‘1박 2일 장구 프로젝트(워크숍)’은 충북 제천에서 올 8월 22일~23일 열 예정이다. 참여하는 사람을 모으고 있다. 이 워크샵은 십시일반 참여자들이 내서 진행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물놀이와 풍물을 개인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지역의 아파트, 노인정에서 노년층과 멋지게 흥을 살리고, 인생을 즐기며 노는 것도 생각 중이다. 많은 참여를 바란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살판 명인(땅재주), 신명나게 살판과 장구 치는 남사당의 후예! 이봉교! 그는 칠보산 산행 중에도 꽹과리를 울려 퍼지게 할 정도로 살판과 한 몸이 되었다.

 
010-3560-3923 이봉교 동방연희단(나비야)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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