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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 3대 전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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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일/안중근 청년아카데미 대표
기사입력 2020/10/26 [11:54]

10월 26일, 오늘은 안중근 장군 하얼빈 전투 111주년 기념일입니다. 오늘 효창공원 안중군 장근 독립지사 묘역에서는 안중근 장군 하알빈 전투 111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 효창공원 독립지사 묘역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10.26의거 111주년 기념식     ©인터넷언론인연대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안중근 의사라고 부르는 안중근 장군님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란 독립군 장군이었으며 스스로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리고 안중근 장군의 독립전쟁사에는 "3대 전투"가 있습니다. 

 

그 첫번째 전투는 연해주에서 의병을 조직 무장해서 국내진공작전 일환으로 일본군과 직접 싸운 <연해주 전투>가 있습니다.  안중근 장군은 하얼빈 의거 이후 재판정에서 자신이 대한의군의 참모중장이므로 형사범이 아닌 전쟁포로로 대우해 줄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안중근 장군이 1908년 결성된 연해주 의병의 의병장으로 의병 부대를 이끌고 국내 진공 작전을 벌였던 활동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에 장군은 당시 재판정에서 연해주 의병 전투를 설명하며 “그것은 3년 전부터 내가 국사를 위해 생각하고 있었던 일을 실행한 것이나, 나는 대한의군(大韓義軍)의 참모중장(參謀中將)으로서 독립 전쟁을 하여 이등(伊藤)을 죽였고 참모중장으로서 계획한 것으로 도대체 이 공판정에서 심문을 받는 것은 잘못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장군은 자신을 전쟁 중 적장을 살해하고 잡힌 '전쟁포로'로 대우해 줄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두 번째 전투는 바로 특수작전을 전개,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처단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전투>입니다.  안중근 장군은 자신의 이등박문 살해가 단순한 ‘살인’이나 ‘보복’의 차원이 아니라 의병이 수행한 독립 전쟁의 한 과정, 따라서 이등의 살해는 2차 전투 중 특수작전인 셈입니다.

 

세번째는 재판과정에서 당당하게 이등방문을 처단한 이유 15가지를 조목 조목 설파하고, 일제의 조선침략 야욕과 부당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동양평화론을 남긴 <여순 전투> 입니다. '여순 감옥'이란 장군이 최후를 마친 중국 '뤼순 감옥'을 우리식으로 부를 때 쓰는 이름입니다.

 

이등박문을 살해하고 체포되어 이 감옥에 갇힌 장군은 이곳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합니다. 장군은 자신의 정치사상을 집대성한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일제에게 사형집행을 미뤄달라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사형이 집행되어 미완성 원고로 남았지만 동양평화론 집필은 또 다른 전투였습니다.

 

동양평화론이란 세력이 커지는 서구에 대항, 동양 3국인 한국·청국·일본이 일심협력해서 서양세력의 침략을 방어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동양3국이 서로 화합해 개화 진보하면서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진력하자는 이론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그의 국권회복운동 전략인 독립전쟁전략 배후 근저에 있던, 동양과 세계의 평화론 사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111년전 중국 하얼빈 역을 생각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안중근 정신을 생각하는 날입니다. 안중근 정신 속에 절규로 메아리 치는 "안중근 외침"을 듣는 날입니다. 

 

"그대들 뭐하시는가? 남북이 소통하고, 신뢰쌓고, 왔다 갔다 교류하고 서로 협력 잘해서 공동번영의 길로 나가라, 무슨 눈치를 보고 있는가? ...75년, 이게 뭐냐 이 멍청한 놈들아" 

 

안중근 장군은 지금 하늘에서 이렇게 외치고 계시지 않을까요?

 

* 사진은 1년전 10월 25일, 전남 함평군 소재 안중근 장군 동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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