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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이준구 교수 “기본소득 지지하는 보수성향 경제학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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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두만 기자
기사입력 2021/06/08 [14:57]

[신문고뉴스] 임두만 기자 =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1,2위를 다투며 여권 후보로는 독보적 1위에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 정책을 두고 보수진영은 물론 여권 내 ‘유력 주자’로 평가되는 이낙연 정세균 양측에서도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이나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기성 포퓰리즘’이란 독한 언어를 써며 비판하고 있고, 특히 유승민 전 의원은 자신의 상표로 ‘공정소득(고소득 부자에게 거둔 세금으로 저소득 빈곤층에게 지급)을 주장하며 이 지사의 기본소득론에 연일 포화를 퍼붓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보수층의 기본소득‘ 폄하에 우리나라의 경제학자 중 최고의 석학으로 평가를 받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이준구 명예교수가 “기본소득제도를 지지하는 보수성향의 경제학자들도 많다”면서 “경제학원론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유명한 맨큐(N. G. Maniw)는 미국의 대표적 보수파 경제학자 임에도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열띤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제도(universal basic income)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고 밝히면서 기본소득론이 진보진영의 포퓰리즘 정책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 이미지 : 이준구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이 교수는 지난 7일 서울대 경제학부 게시판, 그리고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기본소득제도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보수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시카고 대학의 프리드먼(M. Friedman)이며, 현재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있는 경제학자들의 성향도 보수와 진보로 다양하다”고 언급하면서 “기본소득을 진보진영의 대표적 어젠다로 보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맨큐는 정책A(선별 복지)와 정책B(기본소득)의 비교 분석을 통해 선별복지나 기본소득 방식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각 개인별로 정부에서 받는 돈과 정부에서 내는 돈을 뺀 금액을 계산해 보면 소득 수준이 어떻든 간에 A정책이나 B정책의 결과는 거의 같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보수진영 인사들이 지적하는 부자에게 기본소득지급과 관련 “부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한다 하더라도 그만큼 세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선별 복지나 기본소득 간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보수 경제학자들이 행정적으로 단순해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기본소득의 효율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어서 이 교수는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방식은 말도 안 되는 진보진영의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며 “그러나 보수의 아이콘인 맨큔는 선별적 지원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전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 낫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맨큐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점과 관련한 그의 논리는 반박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에 해당 글이 게시된 서울대 게시판에는 기본소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학생들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으며, 이 교수는 댓글을 다는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있기도 하다.

 

즉 “기본소득제가 재정에 큰 부담을 줄까 염려돼 그동안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말한 학생은 “맨큐의 논리를 부정하기 힘든 것에 동의한다. 학계에서의 수준 높은 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가장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이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라고 생각한다”는 댓글을 남겼으며 “기본소득제에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또 다른 댓글러는 “프리드먼이 기본소득도 주장했다는 건 조금 놀랍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이 교수의 페이스북에도 “사례로 언급하신 미국의 '보수'와 대한민국의 '보수'는 정의 및 개념 자체가 다른듯해 마음이 아프다”거나 “동감한다. 재원의 토대와 크기, 지속성에 대한 논의가 지급방식 못지않게 더 의미있을 것 같다” 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아래는 이준구 교수의 게시글 전문이다.

 

기본소득제도를 지지하는 보수성향의 경제학자들도 많다

 

경제학원론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유명한 맨큐(N. G. Maniw)는 미국의 대표적 보수파 경제학자 중 하나입니다. 부시행정부에서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역임한 경력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지요.

 

요즘 내가 읽고 있는 “Combating Inequality”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점차 심화되는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어떤 정책 처방을 사용해야 할 것인지가 이 책의 주제입니다. 20여 명의 저자가 10페이지 내외의 짧은 논문을 쓴 것을 모은 책인데, 이 책의 저자들 중에는 당연히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처음 열어 보았을 때 저자들 명단에 맨큐가 포함되어 있는 걸 보고 조금 생뚱맞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맨큐의 성향상 이런 책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책 중간에 등장하는 맨큐의 글을 읽고 내 첫 느낌이 과히 틀린 것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다른 저자들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이런저런 방안을 내놓고 있는 와중에 그는 홀로 과연 그와 같은 재분배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자신은 잘 알지 못하겠다는 생뚱맞은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글에서 그가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열띤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제도(universal basic income)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이왕 재분배를 하려면 그 제도를 활용하는 게 훨씬 더 낫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제도는 진보진영의 대표적 어젠다로 인식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기본소득제도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보수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시카고 대학의 프리드먼(M. Friedman)입니다.

 

이 글에서 맨큐는 몇 십 년 전 자신이 학생이었을 때 이 아이디어가 등장하는 프리드먼의 “Capitalism and Freedom"이란 책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맨큐가 지적하고 있듯, 그 후 수많은 진보적 경제학자들이 이 제도의 지지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예컨대 1968년에 1천 명이 넘는 경제학자들이 이 제도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냈는데, 그 중에는 토빈(J. Tobin), 새무엘슨(P. Samuelson), 다이아몬드(P. Diamond) 같은 진보의 거성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잘 말해 주듯, 현재에도 이 제도를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의 면면을 보면 보수와 진보를 모두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제도가 진보진영의 대표적 어젠다라고 보는 것은 현실과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수파들은 왜 이 제도를 선호하고 있을까요?

 

그들은 이 제도가 행정적으로 단순하기 때문에 현재의 재분배정책과 관련된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금액을 지불함으로써 도움을 줄 대상을 선정하고 실제로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낭비를 피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맨큐는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습니다. 재분배를 위한 정책으로서 다음과 같은 A와 B 두 가지가 있다고 가정하고 사람들이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지 살펴보자는 겁니다.

 

정책 A : 정말로 가난한 사람만을 골라내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스스로 번 소득이 0인 사람에게는 연간 1만 2천 달러를 지급한다. 스스로 번 돈이 1달러 늘어날 때마다 보조금을 0.2달러씩 줄여나간다.(따라서 스스로 번 연간 소득이 6만 달러가 되면 보조금의 지급이 중단된다.)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은 연간 소득이 6만 달러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20%의 세율로 부과한 조세수입으로 충당한다.

 

정책 B : 모든 사람에게 소득과 관련 없이 연간 1만 2천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은 모든 소득에 대해 20%의 세율로 부과한 조세수입으로 충당한다.

 

맨큐는 정책 A가 (가난한 사람만을 골라 보조금을 지급하는) 현행의 재분배정책과 매우 비슷한 한편, 정책 B는 기본소득제도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따져 보면 이 두 제도가 아무런 실질적 차이를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 개인별로 정부에서 받는 돈에서 정부에 내는 돈을 뺀 금액을 계산해 보면 그 사람의 소득이 어느 수준에 있든 똑같아지기 때문이란 것이지요. 예를 들어 베조스 같은 수퍼리치의 경우 B정책하에서 연간 1만 2천 달러의 보조금을 받지만 세금을 바로 그만큼 더 내기 때문에 A정책하에서의 경우와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부유한 사람이라 해서 B정책이 하등 더 유리할 바가 없다는 말이지요.

 

맨큐는 많은 사람들이 A와 B가 실질적으로 똑같은 내용의 정책이라는 점을 잘 모른 채 기본소득제도를 반대한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두 정책이 실질적으로 똑같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행정적으로 훨씬 단순한 정책 B를 더욱 선호할 게 분명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맨큐는 자신이 가르치는 하버드 대학의 학부생을 대상으로 이 두 정책의 선호도를 비교하는 실험을 실시해 보았답니다. 그 결과 90%에 이르는 학부생이 (현재의 재분배정책에 해당하는) 정책 A가 더 좋다는 답변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수퍼리치에게도 똑같은 금액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미친 짓 아니냐는 말을 하는 학생도 있었다고 하네요.

 

물론 어떤 상황에서나 현행의 재분배정책과 기본소득제도가 똑같은 내용의 정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맨큐가 만들어낸 특수한 상황에서만 양자가 똑같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금액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해서 수퍼리치에게까지도 혜택을 주는 우스꽝스러운 정책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느냐 아니면 선별적으로 지급하느냐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맨큐의 논리에 따르면 그 두 가지 방식 사이의 차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자의 경우 지원금 받는 만큼 (그것의 재원으로 사용될) 세금의 부담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방식은 말도 안 되는 진보진영의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보수의 아이콘인 맨큐는 선별적 지원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전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맨큐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이 점과 관련한 그의 논리는 반박하기 힘들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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